취미/돈 과 사건

돈의 사건 (한국 IMF) 5.

아이언트리 2024. 7. 19.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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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기업 부도 상황.

재개34순위:대농그룹

 

1955년 양백 박용학 창업주가 최성모 동아제분 사장, 이상순 천일곡산 사장, 최호, 어윤일 천부광업 사장 등 5명과 함께 농산물 업체 '대한농산'을 세운 게 본 그룹의 모태이다. 사업 초기에는 1차 산업과 수출입에 주력하며 1967년 초에 고려원양어업과 대한선박을 설립한 후, 쌍용으로부터 금성방직과 태평방직을 인수하면서 면방직에 뛰어들면서 사세 확장의 길을 처음 마련했다. 1969년에는 미도파백화점 운영사 (주)무역회관까지 인수했고, 1973년 대한농산을 중심으로 태평방직, 금성방직, 한일제분, 고려원양어업과 합쳐 '(주)대농'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1972년 경기도 화성군 신관악골프장 부지를 매입해 레저사업에 손을 뻗는가 하면, 1973년엔 세방기업과 합작해 세방해운을 세우고 해운업에 손을 대기도 했다. 같은 시기 경공업과 유통업 편중을 해소하기 위해 중화학공업에 손을 대려고 했으나 1975년 1차 오일쇼크로 은행관리에 돌입해 구 금성방직 공장이나 뉴관악골프장, 부산 해운대호텔 부지 등을 팔아 1980년대 초반부터 경영 정상화를 달성했다.

1977년부터 부회장이 된 장남 박영일은 그룹 정상화 과정에서 방직업 중심에서 탈피하기 위해 1978년 대성건설진흥을 인수했고, 1989년 회장이 되면서 대농창업투자를 세운 후 1992년 메트로콤을 세우고 이듬해엔 미도파를 그룹 중심기업으로 전환시켰다. 뒤이어 같은 해엔 스파메트로, 1994년 메트로프로덕트와 노원케이블TV, KJ산업 등을 각각 인수하고 설립해 사업 다각화를 착착 진행해나갔으나, 무리한 차입경영으로 부채가 1~2년만에 빛의 속도로 급증했다. 마침내 1996년 10월 미도파가 신동방그룹에 팔리게 되자 1,200여억 원을 투입해서 지켜냈으나 그 후유증으로 불과 6개월후인 1997년 3월에 최종 부도를 맞이하자 임원진 일동이 전부 사임하면서 그 다음달인 4월 초에 그룹이 완전해체되었다.

 

  • (주)대농: 구 태평방직. 그룹 해체 후 법정관리를 거쳐 2004년 산은캐피탈-신영개발 컨소시엄에 매각됨.
    • 면방사업부
    • 기계사업부
    • 사류사업부
    • 의류사업부
    • 인테리어사업부
    • 관악사업부 (현 (주)관악): 구 미도파관광. 관악CC(현 그린힐CC) 운영을 담당했으며, 1983년 합병됐다가 2001년 현 명칭으로 분사되어 2002년 신안그룹에 매각됨.
    • 수산부: 구 고려수산. 1971년 합병 후 1974년에 해체됨.
    • 제분공장: 구 삼양제분-한일제분. 1973년 합병 후 1975년에 철수했다.[3]
    • 대구 염공공장: 1974년 태평염직으로 분할 후 매각됨.
    • 고속화물사업부: 1974년 대룡운수로 분할 후 매각됨.
  • 대한농산: 그룹의 모태로, 1973년 태평방직에 합병됨.
  • 한국협동방직: 1971년 태평방직에 합병됨.
  • 금성방직: 옛 쌍용그룹 계열사로, 1972년 태평방직에 합병됨.
  • 대농특수섬유: 구 태평특수섬유. 그룹 부도 후 2000년 폐업됨.
  • 미도파섬유: 1975년 미도파백화점에 합병됨.
  • 대농유화 (현 용산화학): 1997년 (주)용산에 매각됨.
  • 동방흥업: 1974년 (주)대농에 합병됨.
  • 유풍양곡싸이로: 1972년 대한농산에 합병됨.
  • 메트로프로덕트: 구 (주)대농 의류사업부. 그룹 해체 후 독자운영하다가 2011년 폐업됨.
  • 미도파: 그룹 해체 후 법정관리를 거쳐 2002년 롯데그룹으로 매각되어 이듬해 롯데미도파가 됐으나, 2013년 롯데쇼핑에 합병됨.
    • 유통사업본부: 미도파백화점 및 메트로미도파 운영을 담당했다.
    • 건설사업부: 구 대성건설진흥-대농건설. 1985년 합병됐다가 1997년 3월에 그룹이 해체되면서 신규법인 '미도파산업개발'로 분사되어 다음달인 4월에 성원그룹으로 매각되었고 이듬해 성원산업개발에 합병됨. 미도파 건설사업부에서 지은 아파트로 고양시의 강촌마을 3단지 훼미리 아파트와 은빛마을 5단지, 춘천시의 미도파 아파트와 석사 주공 2단지, 대전광역시의 송강그린미도파아파트, 울산광역시의 미도파아파트, 김천시의 주공3단지, 서울특별시의 상계주공 임대아파트로 총 8개 단지가 있다.
  • 춘천미도파: 미도파백화점 춘천점 운영법인으로, 1997년 3월 그룹 해체 후 2003년 (주)동서에 점포를 팔고 법인이 폐업되었으며 백화점은 다시 농심그룹으로 넘어가 M백화점으로써 현재도 영업중. 단 춘천시의 미도파 아파트 내부에 있는 백화점이므로 백화점 규모가 너무 작아, 춘천 사람들사이에서는 사실상 대형마트로 인식되고 있다.
  • 미도파푸드시스템: 구 미도파 코코스사업부-코코스코리아. 1997년 성원그룹에 매각된 후 (주)코코스로 사명을 변경했으나 1999년 워크아웃 후 2003년 자본전액 잠식으로 파산선고받고 당좌거래 정지되어 이듬해 폐업되어 법인이 청산되었다. 부채 비율이 너무나도 심각해서 위의 다른 미도파와는 다르게 롯데그룹에서조차도 인수하지 못했다.
  • 스파메트로: 구 미도파 슈퍼사업부. 편의점 및 슈퍼마켓 체인업체로 1997년 성원그룹에 매각을 시도했지만 1998년 부도로 매각이 무산되면서 사업을 접어 사실상 폐업상태였다가 2001년 완전 폐업되어 법인이 청산되었다.
  • 미도파개발: 구 서복건설. 1997년 그룹 부도 후 '서우건설'로 변경했으나, 1999년 당좌거래정지 후 이듬해 폐업되어 법인이 청산되었다.
  • (구)미도파관광: 1983년 (주)대농에 합병됨.
  • (신)미도파관광: 구 코리아나관광. 그룹 부도 후 1999년 폐업됨.
  • 해운대비치: 해운대비치호텔 운영사로, 1975년 (주)대농에 합병됨.
  • 대농중공업: 콘크리트 펌프카 생산업체로, 그룹 부도 후 1999년부터 법정관리를 받다가 2003년 두성특장차에 매각되면서 신규법인 'DNS'에 매각됐다. 2006년 '대농중공업'으로 사명을 다시 변경했다가 이듬해 최종부도를 맞고 사라졌다.
  • 세방해운: 세방기업과의 합작사로, 1975년 계열분리 후 1984년 범양전용선에 인수합병됨.
  • 대한선박: 개풍그룹[6]과의 합작법인으로, 1985년 사업을 정리함.
  • 제트라인: 소화물 운송업체로, 그룹 부도 후 1998년 폐업됨.
  • 코리아헤럴드·내외경제신문 (현 헤럴드): 1997년 신동방그룹에 팔렸다가 모기업의 부도로 2002년 홍정욱이 대표를 맡던 IKR카리아를 거쳐 2019년 중흥건설에 매각됨.
  • 노원케이블TV: 1997년 (주)건인 (현 휴맥스)에 매각됐으나 1999년 한국케이블TV경동방송에 매각된 후 2001년부터 '씨앤앰노원케이블TV'가 됐다가 2008년 씨앤앰커뮤니케이션에 합병됨.
  • 메트로콤: 인하우스 광고기획사로, 1997년 그룹 부도 후 독립했다가 2007년 폐업됨.
  • 대농창업투자: 그룹 부도 후 법정관리를 거쳐 1999년 아시아M&A에 매각되어 '웰컴기술금융'이 됐으나, 2002년 '세화기술투자'로 사명 변경 후 무한투자에 합병됨.
  • 한메소프트: 한메타자교사와 한메 한글로 유명했던 소프트웨어 회사. 1996년 인수되었다가 1997년 한메소프트 창업주의 재매입으로 결별.

 

재계:한신공영

 

1970년대 강남 개발과 함께 급성장한 회사로 한신더휴(THE HUE)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유명하다. 1980~90년대에 한신코아(현 세이브존)라는 백화점도 운영했으나 1997년 외환 위기를 맞고 흑역사가 되었다. 한신코아 브랜드는 백화점 뿐만 아니라 잠실 한신코아 같은 일부 고급아파트나 오피스텔에도 사용된 바가 있는데 한신코아 브랜드는 비록 아파트에서는 널리 쓰인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파트 업계에서는 이른 시기에 고급 브랜드 마케팅을 도입한 것으로서, 이 브랜드의 파생형으로 부산지역 향토기업과 합작하면서 부산지역 한정으로 쓰이던 그린코아도 있다.

한신공영의 창업주이자 회장은 김형종이었는데, 이 김형종은 1970년대에 한 능력있는 사원을 자신의 딸과 결혼시킨다. 그 사위는 부동산을 보는 안목이 좋아 반포한신아파트 단지 개발을 주도했으며 반포한신아파트에 슈퍼마켓을 차렸고 이게 당시 기준으로 하루에 1000만원을 벌어들이면서 아예 유통업으로 빠졌다. 그 사위의 이름은 김의철. 김의철이 주도하던 유통부문은 빠르게 성장하여 뉴코아그룹으로 발전했다.

이후 김형종 회장이 1983년에 사망하였고, 1993년에 김의철은 자신이 키우다시피 한 유통부문을 가지고 분가하여 뉴코아그룹을 만들었다. 뉴코아는 뉴코아백화점(현 뉴코아아울렛/NC백화점), 킴스클럽 등을 세우며 재벌이 되었지만 1997년 외환 위기 때 부도가 나고 결국 대부분의 계열사가 이랜드그룹에 인수된다.

한 편 1983년에 김형종 창업주가 사망하면서 그룹의 모태이자 핵심사업이었던 건설부문은 외아들인 김태형에게 승계되었다. 김태형은 이후 여러가지 사업에 진출하면서 한신공영을 무난히 이끄나 싶었지만, 1996년에 브니엘학원 이전사업이라는 희대의 사업을 수주하였고 결국 외환위기로 재벌그룹들이 쓰러질 때 브니엘학원과 같이 도산하고 만다.

그러다가 2002년에 한신공영의 건설부문만 따로 분리되어 코암시앤시개발이라는 중견기업에 팔려가면서, 2010년대 현재는 아파트 건설과 도로 등 각종 공공인프라의 건설 수주를 받는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코암시앤시개발로 인수될 당시에 언론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평하였으며, 한신공영에 오랫동안 있었던 중역들은 그래도 한때는 대기업이었단 자부심 탓이었는지 몰라도, 지방 중견기업에 인수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는 말이 있다.

1970~80년대 당시에는 강남개발을 주도하면서 현대, 우성, 삼익, 삼호, 한보, 한양 과 더불어 잘나가는 1군 메이커 아파트로 유명했고 서초구 반포동 일대에 중산층들과 부유층들을 공략하여 1977년 신반포1차아파트부터 1996년 한신타워아파트(신반포 28차 아파트) 까지 무려 19년간 신반포로 불리우는 대규모 브랜드 타운이 만들어지기도 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중동진출 실패로 인해 휘청거리기도 하고 산업합리화 대상업체로 지정되면서 어려움을 겪다가 1990년대 초반에 겨우 정상화 되어 흑자를 보나 싶었는데 IMF 사태때 부도 나면서 중견기업으로 팔려갔다. 그 와중에 삼성물산 래미안, GS건설  같은 후발주자 대기업 아파트 브랜드들이 고급화로 치고 올라오는 바람에 전성기때 라이벌이던 주식회사 한양과 함께 현재는 평범한 브랜드 이미지가 되어버렸고, 요새는 주식회사 한양과 비슷한 도급 순위 까지 보여주고 있다. 도로, 교량 건설과 같은 공공인프라 수주 공사도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 그래도 아예 기업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잊혀진 우성, 삼익, 삼호, 한보보다는 상황이 낫다. 하지만 한신공영이 최전성기에 만들었던 신반포 한신 타운은 부촌의 대명사 중에 하나로 한신공영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주었고 한때나마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한신공영의 부도 후 주인이 바뀌고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사세가 많이 기울어버렸다. 2000년대 이후 이곳이 재건축 될 무렵 한신공영이 자사에게 있어서 상징성이 강한 신반포 한신타운 재건축 사업에 다시 참여하려 했으나 이때는 한신공영의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탓에 입주자들이 재건축 수주 업체로 언급조차 안 해주거나 반대하는 굴욕을 겪기도 하였다. 결국 부도 이후로는 서초구 반포동을 포함한 소위 말하는 강남 권역에 재진출은 번번히 실패하게 되는데, 얼마나 오죽했으면 한신공영에서 신반포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이라도 수주 하려고 입주자 2만 가구에 호소문을 보냈지만, 입주자들은 하나같이 쿨하게 무시했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어찌보면 아파트계의 대우 로얄 자동차 시리즈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

 

이 기업의 잘 안 알려진 또 다른 흑역사로 학교법인 한신학원이 있는데, 1970년대에 서울 서초구 반포동(당시 강남구 반포동) 일대에 아파트를 대량으로 지으면서 한신공영은 엄청난 부를 쓸어 담았지만 그 이면에는 특혜가 있었기에 그에 대한 대가로 반포동 일대에 초등학교, 중학교 용지를 기부채납하기로 했다. 허나, 막상 기부채납을 하게 되자 그 부지가 아까웠던 한신공영은 꼼수로 그 자리에 사립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만들어서 계속 가지고 있으려고 학교법인 한신학원을 1978년에 설립하였다. 하지만 누가 봐도 눈 가리고 아웅이다보니 얼마 안가 그 속셈이 들통나면서 결국 1980년경 법인이 해체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부지는 약속대로 기부채납이 이루어지면서 결국 그 자리에 서울반원초등학교 경원중학교가 공립학교로 들어섰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외에도 남는 부지의 경우는 계속 한신공영이 가지고 있었다가 1990년대 들면서 학교 부지 지정이 해제되어 한신타워(신반포28차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한신공영의 20여 년간의 강남 개발 대여정에 마침표를 찍기도 했다. 그다지 좋지 못한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법인이다보니, 그 사립학교들의 설립 인가가 났더라면 그 부분도 특혜시비 같은 문제로 말썽이었을 것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만큼은 아니지만 기업 규모나 수도권에서의 인지도에 비하면 유난히도 부산광역시(특히 동부산 지역)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던 건설 업체이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중동지역 진출 실패로 자금난에 빠지면서 1987~1992년에 '산업합리화대상업체'로 지정되어 부산지역 진출이 매우 지연되었기 때문. 부산광역시(당시 부산직할시)에 한신공영이 처음 진출한 것은 1985년 분양하고 1987년 3월 입주한 해운대 한신빌리지였으나 이쪽은 3층 규모의 타운하우스에 가까운 빌라였다.

그 후 다음 해인 1988년 11월에 부산지역 향토기업인 주식회사 삼정 및 반도종합건설과 합작으로 서부산권인 만덕에 1468세대 규모 대단지 그린코아 아파트를 공동 건설, 부산지역 향토기업인 주식회사 신익개발(1998년 부도)과 함께 신평동에 937세대 규모의 신익강변2차아파트를 건설하였다. 그와 동시에 근처에 소규모 저층 임대아파트 단지를 단독으로 건설한 것이 시초였으나(입주는 1990년~1991년), 본격적으로 단독으로 부산지역 아파트 사업에 뛰어든것은 1992년이었으며 그해 하반기에는 부산지역에서 처음으로 1408세대 규모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부곡동 경남한신아파트를 경남섬유로 부터 단독 발주 받기도 하였으며 이때 동부산 지역에 본격 진출 하였다.

1994년에는 부산지역 주택사업을 본격화 하기 위해 부산에 작정하고 현지법인을 만드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으나 워낙 부산 진출이 늦었기 때문에 당시 기준으로 한신 아파트는 고급브랜드 임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삼익주택, 주식회사 한양이나 지금도 잘 나가고 있는 선경건설(현 SK건설), 현대건설(현 HDC현대산업개발), 럭키건설(현 GS건설) 같은 유명 고급 브랜드 아파트들은 물론이고 부산 향토기업으로 홈그라운드 버프를 받던 당대 부산최대 건설사인 자유건설은 물론이고 동원개발, 주식회사 삼정, 반도종합건설에도 인지도에서 밀릴 정도인데다가 이미 부산에는 한신주택이라는 비슷한 사명의 건설업체가 1970년대 후반에 훨씬 먼저 들어와서 연립주택과 아파트를 동부산 위주로 워낙 많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부산 사람들은 한신아파트 하면 한신공영 보다는 한신주택을 떠올릴 정도이며 지금도 부산에서 한신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아파트들은 한신공영에서 만든 것 보다 한신주택에서 만든게 더 많이 남아있다.

그래도 1990년대 중반이 되면 부곡동 대단지인 경남한신아파트(1995년 입주)의 성공 및 부산 중심지인 서면의 대양고무 부지에 서면 한신아파트 발주를 따내서 분양하고, 동래구 사직동에서 사직한신아파트를 분양하면서 부산지역에서 나름대로 메이커 아파트 브랜드로 자리 잡는듯 싶었는데, 몇년 지나지 않아 IMF 사태로 부도나고 말았으며 이 무렵에 부도 사태로 인한 하자 보수 문제로 입주민들이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결국 부산진출 타이밍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 게다가 부산지역 언론사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것도 발목을 잡은 원인이었다.

그래도 부도 이후에 워크아웃을 거치고 주인이 바뀌면서 어느정도 재기하여 부산에 재진출해 서부산지역에서 휴플러스 브랜드로 아파트를 계속 짓고 있기는 하지만, 동부산지역에서는 여전히 힘을 못쓰고 있으며 삼성물산이 한동안 부산지역에서 시망 상태가 되었다가 2010년대에 들어서 래미안 해운대, 래미안 장전 등의 분양을 시작으로 부산지역 재진출에 대성공하여 대단지 아파트들을 계속 만들어내는것과 대조되기도 한다. 아마도 주인이 바뀐 이후에는 부산지역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으나 2010년대 중후반 들어서는 다시 부산지역에서 의욕적으로 사업을 전개하는듯 하며, 동부산권에도 IMF 사태 이후로는 정말 오래간만에 재진출 하였다. 하지만 2017년 이후 부산지역의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2018년 들어서 부산 지역업체 용적률 인센티브가 20%로 크게 상향적용되는 바람에 부산 지역 건설업체와의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이 되는 등 암초를 또 다시 만난 상황.

부산 향토기업 건설업체인 주식회사 삼정의 아파트 브랜드 삼정그린코아의 기원이 이 회사이다. 본래는 한신코아 브랜드의 연장선이자 파생형으로 한신공영, 주식회사 삼정, 반도종합건설 3사가 합작해서 만든 만덕 그린코아에서 유래된 부산지역 한정 브랜드였고 그린코아 브랜드를 주식회사 삼정과 공유하기도 했지만, 한신공영이 부도난 이후에 파트너였던 주식회사 삼정 단독의 고유 브랜드가 된것. 아이러니하게도 한신코아 브랜드는 아예 사라지지 않고 다른 회사로 넘어가서 브랜드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늦게 나온 한신 오페라하우스 브랜드는 주인이 바뀌면서 두번밖에 안쓰이고 폐기 당했고, 주인이 바뀐 이후에 나온 한신휴플러스도 실적이 신통찮아 결국은 폐기되며 2016년에 한신더휴로 교체되었다.

구미시에도 한신아파트가 있다. 구미의 행정 중심지인 송정동에 있다. 구미에서 가장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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